2015. 9. 24. 22:20

단편 소설집이다. 단편 소설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책은 정말정말 괜찮았다. 사실 별로 큰 갈등이나 사건은 없지만 어떤 사건을 묘사하는데 그려지는 듯 직접 경험하는 느낌도 들고 등장인물의 처지나 생각에 빠져드는 느낌이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해설에 보니까 뭔가 의미가 많은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읽어도 좋았다. 

잔잔하고 일상적인 사건들인데 내가 직접 겪는 듯한 느낌도 들고 여운이 오래 남는 좋은 소설이었다.

대성당 - 아내의 맹인 친구에게 선입견을 갖지만 맹인 친구와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깨닫는 남자의 이야기

"그런데 말이야. 이런 질문을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뭘 좀 물어봐도 되겠지? 예, 아니오라고만 말하면 되는 간단한 질문이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지 따지는 건 아니야. 난 초대받은 사람이니까. 나는 그저 자네에게 종교 같은 게 있느냐고 묻고 싶은 거야. 이런 걸 물어봐도 괜찮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가 고갯짓을 볼 수는 없었다. 맹인에게는 윙크나 고갯짓이나 마찬가지이다.
"뭘 믿는 건 없다고 봐야겠죠. 아무것도 안 믿어요. 때로 그건 힘든 일이니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물론이네." (…) "이제 눈을 감아보게나." "감았습니다." 내가 말했다. "계속하게나." 그가 말했다. "멈추지 마. 그려." 나는 계속했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에 딱 붙어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이제 된 것 같은데. 다 그린 것 같아. 한번 보게나. 어떻게 생각하나?"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만 더 계속 그렇게 있어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때? 보고 있나?" 그가 말했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아이의 생일을 맞이하여 케이크를 주문하지만 케이크를 찾으러 가야하는 날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이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며칠 후 숨을 거두게 된다.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자 제빵사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닦달을 하게 되고 여자는 너무 화가 나서 제빵사를 찾아간다. 그 케이크의 주인공은 이미 죽고 없다고. 제빵사는 자신의 실수를 진심으로 사과하고 맛있는 빵을 대접하고 부부는 맛있는 빵을 맛보며 위로를 받는다.

이 두가지 이야기가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 소설은 어딘가에서 꼭 읽은 것 같다. 진짜 분명히 읽었는데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안남. ㅠ

Posted by 이니드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