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17. 00:27

제주도 4.3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감명깊게 읽었다. 

 

경하는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 원래부터 편두통, 위경련 등 지병이 있고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제주4.3사건으로 인해 계속해서 우울에 빠지다가 유서를 작성하며 자살을 계획한다. 

그러다가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급하게 병원으로 간다. 경하가 잡지 관련 일을 할 때 사진촬영을 해주던 인선이라는 친구인데 어머니가 치매로 투병하게 되면서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가 어머니를 돌본 후 연락이 거의 끊긴 친구다. 인선은 목공일을 하다가 손가락 두 마디가 잘리는 사고를 당하고 쓰러지는데 이웃주민의 발견으로 서울로 이송되어 봉합수술 후 회복중이었다. 급하게 경하에게 연락한 이유는 제주도 집에 키우던 앵무새가 있는데 그 앵무새의 먹이를 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으니 먹이주는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인선이 다치게 된 이유는 경하의 아이디어로 어떤 작품을 만들기로 했는데 그 부탁을 지키기 위해 통나무를 자르다가 발생한 사고였다. 경하는 인선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병원을 나와서 바로 제주도로 향한다. 하지만 그날 하필 폭설이 와서 제주도의 교통상황이 아주 안 좋은 상태였다. 인선은 인적이 드문 산간마을에 살고 있어서 겨우겨우 인선의 집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경하의 환상과 현실이 불분명해지는데 서울에 입원 중인 인선이 나타나서 경하와 죽을 해 먹고 서로 이야기도 나눈다. 인선의 어머니는 제주 4.3사건의 유족이다. 1948년쯤, 이승만이 5.18.총선거를 열려고 하는데 제주도에서 좌익세력의 반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유독 제주에서 좌익의 저항이 거셌고 선거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도민들 전부 빨갱이고 공산당이니 모두 절멸시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문제는 좌익세력에 그렇게 많은 인원들이 가담한 것이 아닌데 아무것도 모르는 마을사람들, 노인, 여자, 아이, 갓난아기까지 모두 학살해버린 것이다. 

인선의 어머니가 13살때 언니와 함께 숙부 댁에 심부름을 갔고 그 사이에 군경들이 들이닥쳐서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마을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총살시켰다. 그중 인선어머니의 부모님과 여동생도 희생당했고 인선의 오빠는 도망쳤지만 붙잡혀서 감옥으로 보내졌다. 오빠는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받고 힘들게 견디던 중 1950년 6.25전쟁이 터진다. 6.25전쟁으로 다시 '빨갱이'를 절멸시키자는 주장이 거세졌고 또 너무 많은 '빨갱이'들이 붙잡혀서 감옥에 자리도 부족해져서 제주 4.3사건으로 감옥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사형당한다. 그 때 인선어머니의 오빠도 죽게 된 것으로 예상된다. 

인선의 아버지와 인선의 어머니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도 나온다. 제주에서 젊은 남자들을 좌익 빨갱이로 몰아 죽이니까 가족들이 인선의 아버지를 동굴로 보내 거기서 지내게 한다. 아무 일 없는 밤에만 살짝 내려와서 잠을 자고 날이 밝으면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는 죽임을 면했지만 그의 가족들은 모두 학살당한다. 그의 여동생은 아직 갓난아기였지만 바닷가에서 다른 가족들과 함께 총살당한다. 바닷가에 밀물이 들어와서 그때 죽은 사람들은 모두 바다로 휩쓸려갔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인선의 아버지도 나중에 붙잡혀서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다른 제주 사람들보다 훨씬 긴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전쟁이 터지고 감옥에 자리가 부족해서 장기수였던 인선의 아버지는 부산에 있는 감옥으로 옮겨졌는데 이것이 그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때 대구 감옥에 있었던 제주 사람들이 거의 모두 사형당했기 때문이다. 그 중 인선의 외삼촌도 있었을 것이다. 인선의 어머니는 혹시 감옥에서 봤을 수도 있으니까 자기 오빠를 조금이라도 기억하지 않는지 물어보기 위해 인선의 아버지를 만나러 간 것이 인연이 되어 둘은 결혼하게 되었다. 

나중에 10여년 후에 인선의 아버지가 그 바닷가 근처의 민가를 찾아가서 혹시 갓난아기(여동생)도 그 때 학살의 현장에 있었냐고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 아주머니가 갓난아기도 몇 명 보았다고 하자 그러면 학살 후에 바닷가로 떠밀려 온 아기는 없었냐고 인선의 아버지가 다시 물을 때 너무 슬펐다. 

나중에 인선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스크랩해 둔 기사들과 자료들을 보며 어머니가 외삼촌의 유해를 찾기 위해 애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가고 1960년 제주유족회가 결성되는데 그 후 군사정변으로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면서 제주유족회의 회장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총무?에게 15년형을 구형했다는 사실을 읽고 정말 너무 경악스러웠다. 억울하게 죽은 가족의 유해를 찾는 것 조차 못하게 막는 것이 너무 잔인하게 여겨졌다. 제주유족회는 그후 34년후 민간인이 대통령이 되고 서야 다시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Posted by 이니드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