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30. 01:07

이 책은 김두식 저자가 쓴 책 중 3번째로 읽은 책이다. 헙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가족 다음으로. 욕망해도 괜찮아도 이따가 주문해서 읽어야지. 책을 읽다보면 새롭게 알게 되는 지식이 엄청 많아져서 머리가 좋아지는 느낌이 들고 ㅎㅎ 구어체로 이해하기 쉽고 친근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좋다.
이 책은 특히 영화를 소재로 설명해서 더 이해하기 쉬웠다. 내가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본 영화들이 많았고 보지는 못했어도 들어본 영화가 대부분이라서.

제1장 네 멋대로 해라: 청소년 인권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나 청소년들의 인권을 무시해서 지켜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사랑이나 좋아하는 일, 친구들과의 추억 등도 대학가서 하라는 식으로 미루는데 그런 일들은 그 나이때에 할 수 있는 일이고 대학을 이유로 억압하는 거다. 복장단속, 두발단속 등도 그렇고 강제야자도 그렇고. 사실 저자 말대로 머리를 염색하거나 치마를 짧게 입는다고 해서 그게 내 머리를 안 돌아가게 만들어서 공부를 못할 일은 없는 거다. 외국영화를 봐도 고등학생들이 자유롭게 옷을 입고 차도 타고 다니고 별 짓을 다하지만 미국 등 많은 경우가 우리보다 인재가 더 많고 결과가 좋은 경우가 많으니까.
지랄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은 평생 써야할 지랄이 있는데 그게 청소년기에 많이 나타난다. 어차피 쓸 지랄이니까 받아주라는 말이다.

제2장 왜 이렇게 불편할까?: 성소수자 인권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 동성끼리 서로 연애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안들다가 그들이 키스를 하거나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면 거부감이 든다. 진짜 맞는 것 같다. 쌍화점이나 로드무비 등에서 나도 느꼈으니까. 그 이유는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그건 아닌 것 같은데. 무의식 속에 있을 수도 있겠지. 남과 다른 건 무서운 거니까. 차별받을테고)과 그냥 동성끼리 만나고 대화하는 장면은 이성커플과도 많이 다르지 않으니까 거부감이 없는데 동성끼리의 과한 스킨십을 많이 다르기 때문에 거부감이 드는 거라고 한다.
호모포비아(호모를 경멸하고 증오함)은 실제로 자신이 호모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이 호모이면서 증오하는 것. 우리가 누군가에게 화가 날 때 거기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가?
하버 밀크라는 사람은 커밍아웃을 한데다가 유명한 정치인이었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하는데 호모포비아인 정치가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우리 주변에도 동성애자는 있다. 단지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것 일뿐. 저자는 동성애자들이 당당하게 커밍아웃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옛날 미국의 성직자들은 교사 중에 동성애자를 자르자며 그를 보고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이성애자인 교사밑에서 배운다고 해서 이성애를 배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동성애자 교사가 가르친다고 해서 동성애자가 되는 것도 절대 아니고.
동성애자들의 결혼은 우리나라에서 금지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고. 그래서 동성애자들은 다른 주에 가서 결혼하고 살던 주로 돌아오는데 다른 주에서 결혼하고 돌아오면 뉴욕같은데서는 그 결혼을 인정하기 때문. 사실 결혼이라는게 사랑하는데 꼭 필요한 건 아니다. 동거로도 충분할 수 있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기 때문에 동성애자들간의 결혼도 인정해야 한다.

제3장 뺨따귀로 사랑 표현하기: 여성과 폭력

드라마 삼순이에서 현빈이 자신한테 말없이 몇 년간 떠나버린 려원에게 왜 떠났냐고 따지자 려원은 암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빈은 그 말을 듣고 려원이 뺨을 세게 친다. 나도 느꼈지만 이건 정상이 아니다. 아무리 빡이 쳐도 여자의 뺨을 때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한 번 때릴 수 있는 사람은 두 번, 세 번 때릴 수 있다고 하니까.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소지섭도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자기를 자꾸 거절하자 차에 강제로 태우고 질주하는데 이것도 정상이 아니다. 저자는 뺨을 때리거나 강제로 여자를 차에 태우는 사람은 절대 상종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데 맞는 말 같다.
똥파리라는 영화는 나도 봤는데 폭력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보통 영화에서는 멋진 조폭 등을 등장시켜 폭력에서 쾌감을 얻게 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이 영화에서는 현실의 폭력을 보여준다. 나이든 어머니를 때리고 사채업자로서 빚 안 갚는 사람을 때리고 지나가다 여자를 때리는 남자를 때리고 맞는 여자도 왜 맞고 있냐며 잔인하게 때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탐욕에 물든 자신의 오른팔에게 죽임을 당한다. 폭력의 결말은 폭력이다라는 주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의 진짜 폭력의 무서움은 전혀 쾌감을 느끼기는 커녕 무섭고 잔인하고 거부감들고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연애의 목적에서 박해일도 정상이 아니고 성추행이다. 이건 너무 당영한 거라서.
페미니즘은 초기에 나온 이론으로 여자도 남자와 같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귀찮게 머리를 기르거나 불편한데 치마를 입거나 꾸미는 것을 모두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이와 달리 포스트페미니즘은 금발이 너무해의 주인공처럼 여성스러움을 마음껏 누리면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거다.
남자나 여자나 맞벌이면 집안일을 같이하는 건데 남자는 집안일을 그냥 한다고 하면 되지 도와준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고.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자가 집안일을 좀 잘하면 엄청 칭찬하다. 대단한 남자라고 좋은 남자 만났다고 사실 같이 해야하는 건 당연한건데. 결혼하기 싫은 이유들 중의 하나다.
못생긴 여자를 사람 취급 안하는 우리나라의 풍조. 나는 정말 이해도 안되고 솔직히 진짜 싫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만 하는 사람도 나는 이해하기 힘들다. 사실 어딜 가나 그렇지만 우리 나라에서 특히 그런 이유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풍조때문이라고 한다. 외국과 달리 패션도 일관성이 있고 다 비슷한 스타일로 입고 다니고 조금이라도 다르면 쳐다보고 뒷담화하까지 하니까.

제4장 공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까?: 장애인 인권

장애인들은 그냥 병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조금 불편하다는 것 뿐인데 예전에는 독일 등에서 장애인들을 저속한 유전자라고 생각하고 사람 취급조차 안하고 학살했다.
오아시스라는 영화에서 뇌성마비(지능은 일반인과 다를바가 없다)인 문소리와 전과자 설경구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서 문소리가 설경구에게 같이 자자고 요구한다. 같이 자려고 하는 와중에 문소리의 친척이 들어와서 설경구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다. 문소리의 의지인데도 장애인의 생각도 없고 의지도 없고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니까 당연히 성추행당하겠거니 생각한거다. 그리고 저자가 비판한 것은 문소리는 지능이 그대로인데도 불구하고 설경구가 잘못없다는 것을 어필하지 못했다는 거다. 그 상황에서 놀라서 그랬다면 후에 편지로 호소하거나 경찰서에 찾아가서 호소하면 될 일인데 설경구는 감옥에 형을 사는 걸로 끝이 난다. 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감독도 모르게 남긴다는 거다. 그리고 문소리의 상상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 상상속의 자신은 비장애인으로서 설경구와 사랑하는 장면이다. 비장애인만이 사랑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영화는 환상을 너무 많이 보여줌으로써 그런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한다는 걸 비판하고 있다.
포레스트 검프의 톰 행크스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이 영화가 장애인 인권 측면에서 가장 바람직한 표본이라고 한다.
300에서도 마찬가지. 스파르타의 300명의 전사는 인간으로 훌륭한 몸을 가진 것으로 묘사하고 페르시아인들은 장애인 혹은 괴물로 묘사한다. 열등하고 악한 성격의 배신자를 꼽추로 묘사한 것도(원작에서는 장애인이 아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다.

제5장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는 언제 나올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의 아버지는 영국의 탄광노동자다. 대처는 수익성 낮은 탄광을 폐쇄시키는데 그 탄광의 노동자는 모두 시위에 들어간다. 대처는 무자비한 정책으로 노조의 시위를 묵살하고 탄광을 다수 폐쇄한다.
노조가 없던 시절에 대기업에 다니는 인재들은 복장단속, 두발단속을 당하고 얼차려를 당하는 등 인권을 지켜주지 않았다. 한 기업에서는 도시락도 개밥이나 다름없는 도시락을 주어서 노동자들의 불만이 거세졌다. 상관들은 도시락을 먹지 않거나 많이 남기는 노동자들을 일일이 체크하는데 한 명의 노동자가 "집에 개 키웁니까? 개나 주소."라고 하며 도시락을 그의 앞에 내려 놓는다. 그를 따라 모든 노동자들은 도시락을 반납하고 그 이후로 도시락의 품질이 좋아졌다는 거다. 이처럼 기본적인 인권도 노조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지켜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조금 복잡해져서 비정규직 노조, 정규직 노조들 간에도 이권 다툼이 있고 남성, 여성 노조 사이에도 그런 것이 있어 상관들이 의도적으로 반목하게 만들어서 단결하지 못하게 하는 수법도 쓴다고 한다.
예전에는 노동자를 자르려면 정당한 이유가 필요하다는 법이 있었다. 정리해고는 기업에서 회사의 생존을 위해 마지못해 자른다는 이유를 대는 것이고. 근데 요즘은 그런 법이 많이 바껴서 노동자의 인권은 더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이제 비정규직법을 만들어서 2년 일한 후 정규직으로 만들어주라고 하는데 이 법을 악용하여 사장은 2년 되기 전에 비정교직을 잘라버린다. 이 법이 악용되는 걸 뻔히 알면서 이제 4년으로 늘린다고 한다. 비정규직을 위한 게 아니고 가진 자를 위한 법.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똑같은 강도로 똑같은 시간 일해도 임금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물건을 만들 때나 아이디어를 생성해 낼 때 비정규직들의 효율성은 높지 않을텐데. 소속감도 없고 자신의 혼신을 다하지 않을 것이므로.

제6장 1년에 600명의 청년들이 교도소에 가는 나라: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밀양의 영화에서의 기독교는 저자인 기독교인이 인정하기에 우리 나라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조금 충격인게 나는 별난 기독교인들을 묘사한 것인 줄 알았는데 기독교인 중에서도 친절하고 괜찮은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전도연이 집회 중에 거짓말이야라는 노래를 틀 때 목사도 진짜 목사라고 한다. 근데 그 목사는 진짜 리얼하긴 했다. 밀양에서는 기독교인들 특유의 속죄 후의 너무 빠르게 자신을 용서하는 것의 부작용을 말하고 있다. 사람을 죽여 놓고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는 이유로 너무나 편안해진 모습에 전도연은 충격을 받는다.
여호와의 증인은 총을 들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전과자가 되는데 그런 사람들이 1년에 60여명이라고 한다. 진짜 이해안되는게 훨씬 힘든일, 긴 기간으로 시켜도 그들은 거부하지 않을텐데 뭐하러 전과자를 만들어서 아까운 인재들을 사회로 제대로 진출시키지 못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안간다. 또 나는 개인적으로(여자니까 상관없지만) 군대라는 것 자체가 싫어서 군대 안 갈 수 있는 방법만 있으면 절대 가지 말아야 하고 해병대 이런데 가거나 찬양하는 사람들 이해가 안가서. 군인이라는 직업도 싫다. 선진국들에서는 대부분 대체목무를 인정하고 있고 우리나라가 전시상황이네 어쩌네 하지만 그 나라에서는 세계대전 중에도 대체복무를 인정했다. 그리스에서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을 때 1년에 10명 정도가 그에 해당했는데도 국가적으로 엄청난 이슈가 되고 문제였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60배에 해당하는데도 이슈가 되지 않는게 이상하고 다른 건 다 선진국 따라가려고 하면서 이 부분에서는 변화가 없는게 이상하다.

제7장 영화 화면을 자르는 사람들: 검열과 표현의 자유

영화 등급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듣고 보니 옳은 말이다. 내가 중학생 때 단골 비디오 가게에서 성인 등급의 영화들을 다 빌려볼 수 있었다. 왜냐면 단골이라서 특별히 빌려줬다. 근데 진짜 좀 괜찮은 영화들은 다 성인 등급이고 아닌 건 빌릴 게 별로 없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올드보이 봤던 거 기억나는데 근데 진짜로 내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고 그 영화본다고 해서 내가 잘못되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등급은 누가 정하는지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들이 정할 수 밖에 없는게 그런 일은 진보적인 사람은 당연히 안하려고 할테고 국가에서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더 야해도 이성애는 등급이 낮고 키스만 해도 동성애는 등급이 높고 정상적인 체위로 하면 등급이 낮고 별로 안하는 체위하면 등급이 높은 것도 이상하긴 한 것 같다. 정상, 비정상 구분하는 기준도 명확하지 않고 소수라고 해서 비정상은 아닌데.

제8장 누가 앵무새를 죽였는가?: 인종차별의 문제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이 있다는 건 많이 들어봤는데 흑인인종차별에 대한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백인들로부터 린치를 당하는 약한 흑인을 앵무새에 비유했다고 한다.
린치라는 것이 죄를 저지른 흑인을 사법부에 넘기지 않고 백인들이 단체로 고문하여 죽이거나 총살하거나 나무에 목매달아 죽이는 것이라고 한다. 흑인들을 죽이는 이유가 백인여성강간때문일고 주장한다. 백인남성이 백인여성을 보호한다는 의미다. 근데 통계치를 보면 강간관련해서 린치를 당하는 경우는 3분의 1도 안되고(신문에 난 경우의 통계일 뿐 비공식적인 린치까지 포함한 횟수도 아닌데) 흑인과의 성관계에 동의한 백인여성의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여성이 동의했는데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강간죄를 적용하여 죽인 것이다.
그리고 흑인들이 식료품 가게를 차리자 당연히 흑인들은 백인 식료품 가게에 가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을 이유로 백인들이 흑인 식료품 가게의 사장들을 죽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백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흑인을 린치하는 과정을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백인여성 강간 운운하는게 우리나라의 동남아 노동자들이 한국여성 강간운운하며 인터넷에 광신적으로 글을 올리는 일부 종자들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실 흑인 남성 강간보다 백인 남성 강간이 훨씬 더 많기도 하고.
영화번역이 만들어내는 부적절한 상하관계. 나는 이걸 옛날부터 생각한건데 미국에는 분명히 존댓말이 없는데 여자가 남자에게 존댓말쓰고 남자는 여자에게 반말쓰는 경우가 많다. 둘이 친군데 뜬금없이 여자가 남자에게 존댓말쓰기도 하고 부부관계에서도 남자는 반말, 여자는 존댓말. 또 좀 권력있어보이는 사람은 반말, 좀 딸리는 사람은 존댓말. 그냥 볼 때 평등한 관계같은데도 저러면 진짜 영화보기가 싫어진다. 평소 남녀관계에서도 같이 반말, 아니면 같이 존댓말인 경우가 훨씬 많은데.

제9장 그냥 다 죽이면 간단하지 않나요?: 차별의 종착역, 제노싸이드

제노싸이드는 대량학살을 뜻한다. 영화를 볼 때 한 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과정을 보면 누구나 분노하고 충격도 받는다. 그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황인지 등 등을 다 알고 보는 거기 때문에. 근데 외국 특히 아프리카 등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몇 만명 몇 십만명이 죽는 뉴스를 볼 때는 별 충격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살해당한 사람 한 명 한 명에게도 많은 사연이 있고 삶이 있고 미래가 있는 건데. 한 사람은 우주 자체고 그 사람이 소멸하면 우주 하나가 소멸한 것인데도.
이것도 옛날에 한성별곡이라는 드라마 볼 때 생각했던 건데. 드라마 자체는 좋은데 진짜 짜증나고 싫었던게 주인공 여자가 자신이 믿는 신념을 이룰려고 사람들을 죽이는데 악한 사람만 죽이는게 아니고 방해가 되거나 그 대장 밑에서 일하는 부하들까지 다 죽이는 게 너무 짜증났다. 저 드라마에서 아무 대사도 없이 유명한 배우도 뭣도 아니고 알바하는 사람이 죽는 거겠지만 저 사람도 자기를 바라보는 가족이 있고 그 사람 삶이 있고 똑같이 한 명의 인간인데 너무 쉽게 죽여버리는 게 이해가 안갔다. 그것도 여자주인공이 가진 신념때문에. 누가 목숨을 위협한 것도 아닌데. 또 어떤 액션영화 제목은 기억이 안나지만 그 사람이 자신의 딸을 해쳐서 복수를 하는 데 그러면 그 복수를 당한 자의 가족은 또 복수를 할테고 또 복수하고 언제 끝나는 거지? 그 사람도 복수하려고 그 주변사람들까지 다 죽여가면서.
르완다에서는 후투족과 투치족으로 나눠지는데 이건 벨기에게 식민통치를 하면서 임의적으로 나눈 것이라고 한다. 투치족이 권력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민족의 분열을 위해서 이간질한건데. 식민통치후에 후투족이 투치족을 대량학살하게 되었다. 미친듯이 학살해서 몇 만명을 죽이고 라디오방송을 통해서 투치 바퀴벌레가 어떤 골목 무슨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죽여라고 방송을 해서 선동했다. 인간을 바퀴벌레로 묘사해서 가볍게 생각하도록 만든건다. 후투족 살해자들은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계속 죽였다.
진짜 희생자 수로 따지면 국가의 선동, 시스템의 선동에 의한 대량학살이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누가 누구한테 어떻게 죽었네를 아무리 보고 또봐도 희생자 수로는 제노싸이드를 이길 수 없다. 그만큼 심각한 문젠데 우리는 어디 아프리카 다른 인종이니까 별 상관을 안하는 거다.
또 어떻게 봤을 때 사람들은 주로 홀로코스트만을 대량학살의 대표로 알고 있는데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이 이민족을 학살한 경우가 많고 희생자수로 따져도 더 많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돈이 많고 힘이 있으니까 자신들의 희생을 계속 홍보?하는 거고. 그래봤자 그들은 지금 팔레스타인들의 땅을 뺏고 학살하는데도 홀로코스트를 이유로 죄를 덜려고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안 그런 경우가 대부분인데 독일은 나치들은 대부분 죗값을 치뤘으니까. 내 말은 더한 학살도 많다는 거다.
유전자로 따지면 겨우 0.05%의 달라서 인종이 나눠지고 성별이 나눠지는 거니까 누구나 소중하게 생각해야 되고 차별해서는 안된다.

Posted by 이니드417